임박한 파국, 무엇을 할 것인가?
작성일2013-09-13본문
'임박한 파국,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멋진 제목을 가진 책이 얼마전 비매품으로 출판되었다. 슬로바키아의 스타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첵의 2012년 한국방문 강연과 대담을 글로 옮겨 놓은 책이다. 내용은 대략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상황, 특히 소수 지배계급의 끝없는 탐욕과 대다수 노동자, 농민 대중의 하향평준화를 가속화하는 신자유주로 인해 자본주의 자체가 극한의 한계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러한 파국, 임박한 파국상황에서 피지배계급 대중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것이다.
전세계의 진보세력이 중남미를 제외하고는 신자유주의 세략에 눌려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일하는 자의 이상향을 지향하는 그의 존재는 한줄기 빛임에 틀림이 없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서,
지첵의 강연, 대담집에 위의 멋진 제목이 붙었다 해서 그 문장의 지적소유권이 지첵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문장은 잘 아시다시피 약 일백십여년전 레닌이, 러시아 짜르 봉건체제의 폭력과 질곡으로부터 고통받아온 러시아 민중들에게 러시아 혁명을 앞둔 임박한 파국상황에서 무억을 어떻게 할 것인지 긴급하게 제기한 책자의 제목이다. 그 이후 소위 투비던(What is to be done ?)으로 요약된 이 문장은 백여년 이상, 그리고 현재까지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話頭가 되어왔다.
이제 우리조직, 백척간두에 서 있다고 표현되는 우리 연초조직의 임박한 파국직전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것인가? ' 얼마남지 않은 시간에 집중적인 고민과 토론을 통하여 이 화두를 해결해야 한다.
툭하면 회의 때마다 대안을 제시하라, 대안을 제시해달라 하고 얘기하였지만 특별한 대안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 합리적인 대안이 있었다면 왜 진즉 그 대안이 출현하지 못했겠는가?. 위로도, 아래로도, 옆으로도 소통이 되지 않는 조직에서 어떻게 대안이 출현할 수 있겠는가?. 신자유주의가 출현하여 모든 존재들을 경쟁의 광풍으로 몰아넣을 때에야 '어마 뜨거라'하고 깜짝 놀라 '변하자'고 했지만, 어떤 방향으로 튀어야 할지, 어떤 내용으로 고민을 해야 할지 알수 없을 만큼 고리타분하고 타성에 젖은 관성의 열심만으로는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의 고민은 각 개인의 뇌리안에 갖히게 되고, 불통은 불만으로 쉽사리 변질되고 만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소통하지 않으면 안된다. 누군가 과잉으로 권한을 갖거나, 그 권한에 맞게 과잉으로 책임을 지려 하거나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극단적인 흉년에도 아무도 권한에 걸맞게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 권한을 최소로 가지려 하거나, 그 권한에 맞게 책임을 최소로 지려 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권한과 책임이 적다고 해서 명퇴의 칼날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이 극단의 파국 직전의 상황에서 직급에 관계없이 충분히 듣고 충분히 발언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통해 나의 단점을 메워나가면서 조직을 강화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긴박하게 소통하고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에 관해서?
지금 논란에 되고 있는 굴러들어온 호박인 도입품종에 관해서다.
이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각자의 의견을 얘기해보자.
누군가 자기몸을 내던지면서 남긴 한마디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할 때 우리는 노예가 된다"
중구난방 떠들어서 될 일이 아니다.
이 공간에서 차근차근 얘기하면서 변수들을 차단하고 도입품종의 가능성에 대해서 의견을 모아보자.
어차피 안되면 시차를 두고 다 짐을 싸야 한다.
'임박한 파국상황에서, '나'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불씨는 던져놓았으니 이제 크고 작은 장작으로 토론과 소통의 불을 환하게 밝혀보자
마음의 평화 존재의 평등 이동춘 합장
이 멋진 제목을 가진 책이 얼마전 비매품으로 출판되었다. 슬로바키아의 스타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첵의 2012년 한국방문 강연과 대담을 글로 옮겨 놓은 책이다. 내용은 대략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상황, 특히 소수 지배계급의 끝없는 탐욕과 대다수 노동자, 농민 대중의 하향평준화를 가속화하는 신자유주로 인해 자본주의 자체가 극한의 한계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러한 파국, 임박한 파국상황에서 피지배계급 대중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것이다.
전세계의 진보세력이 중남미를 제외하고는 신자유주의 세략에 눌려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일하는 자의 이상향을 지향하는 그의 존재는 한줄기 빛임에 틀림이 없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서,
지첵의 강연, 대담집에 위의 멋진 제목이 붙었다 해서 그 문장의 지적소유권이 지첵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문장은 잘 아시다시피 약 일백십여년전 레닌이, 러시아 짜르 봉건체제의 폭력과 질곡으로부터 고통받아온 러시아 민중들에게 러시아 혁명을 앞둔 임박한 파국상황에서 무억을 어떻게 할 것인지 긴급하게 제기한 책자의 제목이다. 그 이후 소위 투비던(What is to be done ?)으로 요약된 이 문장은 백여년 이상, 그리고 현재까지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話頭가 되어왔다.
이제 우리조직, 백척간두에 서 있다고 표현되는 우리 연초조직의 임박한 파국직전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것인가? ' 얼마남지 않은 시간에 집중적인 고민과 토론을 통하여 이 화두를 해결해야 한다.
툭하면 회의 때마다 대안을 제시하라, 대안을 제시해달라 하고 얘기하였지만 특별한 대안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 합리적인 대안이 있었다면 왜 진즉 그 대안이 출현하지 못했겠는가?. 위로도, 아래로도, 옆으로도 소통이 되지 않는 조직에서 어떻게 대안이 출현할 수 있겠는가?. 신자유주의가 출현하여 모든 존재들을 경쟁의 광풍으로 몰아넣을 때에야 '어마 뜨거라'하고 깜짝 놀라 '변하자'고 했지만, 어떤 방향으로 튀어야 할지, 어떤 내용으로 고민을 해야 할지 알수 없을 만큼 고리타분하고 타성에 젖은 관성의 열심만으로는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의 고민은 각 개인의 뇌리안에 갖히게 되고, 불통은 불만으로 쉽사리 변질되고 만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소통하지 않으면 안된다. 누군가 과잉으로 권한을 갖거나, 그 권한에 맞게 과잉으로 책임을 지려 하거나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극단적인 흉년에도 아무도 권한에 걸맞게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 권한을 최소로 가지려 하거나, 그 권한에 맞게 책임을 최소로 지려 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권한과 책임이 적다고 해서 명퇴의 칼날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이 극단의 파국 직전의 상황에서 직급에 관계없이 충분히 듣고 충분히 발언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통해 나의 단점을 메워나가면서 조직을 강화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긴박하게 소통하고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에 관해서?
지금 논란에 되고 있는 굴러들어온 호박인 도입품종에 관해서다.
이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각자의 의견을 얘기해보자.
누군가 자기몸을 내던지면서 남긴 한마디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할 때 우리는 노예가 된다"
중구난방 떠들어서 될 일이 아니다.
이 공간에서 차근차근 얘기하면서 변수들을 차단하고 도입품종의 가능성에 대해서 의견을 모아보자.
어차피 안되면 시차를 두고 다 짐을 싸야 한다.
'임박한 파국상황에서, '나'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불씨는 던져놓았으니 이제 크고 작은 장작으로 토론과 소통의 불을 환하게 밝혀보자
마음의 평화 존재의 평등 이동춘 합장



